시(어머님)라면 8

"나이가 늙음을 먹어버린 날

제12화나이 늙음을 먹어 버린 날   명절이 다가와요새해 첫날어머님 모시고 큰집 가서제사 지내고우리 집으로 오시고주무시고   명절이 다가와요추석 한가위어머님 모시고큰집 가서제사 지내고우리 집으로 오시고주무시고   5월이 다가와요어머님 생신날어버이날어머님 모시고강강술래 가고생신상차림 식사하고꽃대골 꽃구경 가고드라이브하고   12월이 다가와요작년에 담근김장김치 송송 썰고돼지고기 넣고숙주 넣고두부 으깨 넣고얼큰한 김치만두 빚어지하철 타고버스 환승하고막내아들 집에 오셨죠   누구의 도움 없이가고 싶을 때 가고드시고 싶을 때 드시고입고 싶을 때 입으셨던어머님이오늘은팬티기저귀를 어쩔 수 없이입으셔야 했어요   누구도가고 싶지 않은 곳 먹고 싶지 않은 것 입고 싶지 않은 옷을함부로 할 수 없었어요그런데오늘은하셨어요 ..

"작은 그릇에 어찌 담으려 하는가

제10화작은 그릇에 어찌 담으려 하는가   작은 손작은 체구작은 심장   작은 손이큰 칼을 드니날 선 칼에 손을 베고   작은 체구가침대 매트리스 청소를 하니산만한 매트리스에 몸이 넘어져 허리를 다치고   작은 심장이버럭 소리를 들으니천둥 같은 소리에 심장이 멎는 듯 아프고   작은 손작은 체구작은 심장이어찌 담으려 하는가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네 맘에 드는 색으로 골라봐라

제8화네 맘에 드는 색으로 골라봐라   일요일은시댁 가는 날이다오늘의 메뉴는동지팥죽이고후식 과일은 샤인머스캣과 설향딸기고저녁 간식은카스테라빵이다   "왔냐?"주름진 얼굴에 화색이 도신다"뭘 이렇게 많이 사 왔냐?"아들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신다"오랜만에 동지팥죽을 먹어보네"며느리 상차림에 흡족해하신다"맛있게 잘 먹었다"참 듣기 좋은 말씀이시다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안방문을 열고 다시 나오시더니수줍은 소녀처럼 웃으신다가쁜 숨을 몰아쉬시며굽은 허리 뒷짐에서 옷을 내미신다알록달록 예쁜 꽃무늬조끼다   "며느리들 하나씩 주려고 샀다"마음에 햇살이 비칩니다"네 맘에 드는 걸로 골라봐라"햇살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분홍색이 젊고 이쁘다 "마음에 따뜻한 마음을 더합니다   어제 내렸던 비는오늘도 내리고내일도 내리겠지..

"미움 받을 용기

제6화미움 받을 용기   미움받을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에요376,680 날의 시간들87년의 그 외로웠을 세월들남편 없이 세 아들 홀로 키우셨죠그 시간 그 세월이 너무 아파서 일요일마다 어머님 댁에 가는 거예요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에요45 날의 시간들1998년도 그 추웠던 겨울신생아 중환자실 면회시간 18:00에 매일 오셨죠그 기도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일요일마다 따뜻한 밥상 준비해서 가는 거예요    원하는 대로 해달라는게 아니에요4,380 날의 시간들119 응급차량 그 위급했던 응급실집 화장실에서 식당에서 식사 도중 쓰러지셨죠그 순간 그 상황이 너무 염려돼서일요일마다 안 드시겠다는 약 드시게 하러 가는 거예요    잘못이라는게 아니에요머리 감기 싫어하는 거미끄럼방지용 운동화 안 신겠다는 거새 ..

"나는 방관자처럼 나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제5화나는 방관자처럼 나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무엇을 하든내가 어디를 가든내가 누구를 만나든방관자처럼나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산책길에 쌓인 낙엽잎을 싸리빗자루로 쓸고 무엇을 하든엘그레코의 집이 있는 스페인 톨레도에 어디를 가든옛 친구 누구를 만나든방관자처럼나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시어머님 병원 가는 날에몸이 안 좋아서 못 간다고 거짓말을 하는 나를방관자처럼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일요일 아침에결혼기념일이라서 못 간다고 핑계 대는 나를방관자처럼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방관자처럼나를 보지 못하고침묵하지도 못한다   그래서오늘도 나는방관자처럼나를 보고 싶다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어쩔 수 없네

제2화어쩔 수 없네  울린다내 핸드폰 벨소리뜬다시어머님 휴대폰 번호 11자리  "얘야! 전기밥솥의 밥이 안된다~""뚜껑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리고 취사 버튼을 누르세요""그래도 안되는데~ 신경질 나 죽겠네""제가 가면 고쳐 드릴게요~"  또 울린다내 핸드폰 벨소리또 뜬다시어머님 휴대폰 번호 11자리  "얘야! 전기밥솥이 고장 났는지 밥이 안된다~""제가 가면 고쳐 드릴게요~""신경질 나 죽겠네~ 네가 올래?""네~ 얘 아빠랑 같이 갈게요"  또다시 울린다내 핸드폰 벨소리또다시 뜬다시어머님 휴대폰 번호 11자리 "야~! 전기밥솥이 안돼~ 고장 났나 봐~!""네~ 고장 났나 봐요""신경질 나 죽겠네~ 언제 올 거냐~?""지금 출발해서 갈게요" 전기밥솥 고장이 아니다사용법을 잊어버리셨다치매..어쩔 수 없네   ..

"먹을 테니 버리지 마

제1화"먹을 테니 버리지 마!" 새까맣다무엇이?바지락된장찌개가. 새하얀 솜털 곰팡이다어디에?흰쌀 햇반에. 노랗다어떻게?먹음직한 단호박처럼. 새까맣게 태운 바지락된장찌개를새하얗게 곰팡이 핀 햇반을노랗게 상한 단호박을 "먹을 테니 버리지 마!"조금 두려워집니다시어머님의 치매가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