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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오늘이 특별한 오늘입니다

제9화 당연한 오늘이 특별한 오늘입니다 일요일은친정 가는 날당연한 오늘이특별한 오늘입니다 아버지께는노란빛깔 고운 늙은호박죽 끓여 담고엄마께는양모털 따스운 꽃무늬 조끼 사서 들고오빠에게는살아 숨 쉬는 유산균종균 요거트 만들어 담고남동생에게는프라이팬으로 노릇노릇 눌린 누룽지 들고 간다 손 큰 둘째 언니는등심생고기 구워 쌈채소에 기름장과 양념장 곁들여 넉넉하게 해주고 아낌없이 퍼주는 셋째 언니는바다향 가득한 생굴 한아름 사와밀가루 입히고 계란 묻혀 맛깔스러운 굴전을 내어주고 덤으로달달한 향기 품은 탱탱한 설향딸기와담백한 꼬막무침까지 푸짐하게 사준다 나는 안다 나의 그릇은 국그릇이라는 것을나는 안다언니들의 그릇은 냉면그릇이라는 것을 국그릇은 그만큼만 하는데냉면그릇은 그만큼보다더 해주고더..

친정라면 2024.12.23

"너와 나 송전탑처럼 가자

제4화너와 나 송전탑처럼 가자가족간의 거리두기   산봉우리마다 단호하게 버티고 서 있는 송전탑들은멀리 떨어져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지만길게 뻗어 잡은 손만큼은 뜨겁고 강렬하다   송전탑들은 간격 벌리기와 좁히기의 시행착오 끝에각자 서 있어야 할 최적기의 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너와 나 송전탑처럼 산과 바다를 건너자   한 발 가까워질수록 급상승하는 바람과 기대는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만 깊어간다   끊어낼 수 없는 인연으로 연결된 우리들돌발 상황에 중심을 잃고 벗어난 거리의 오차는미련 없이 털어낼 수 있는 접지선을 쥐고 가자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비바람을 견딜 수 있다어둠 속으로 빛을 실어 산과 바다를 가는 송전탑처럼밤이 오면 우리 달빛을 베고 함께 잠들자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

"그대와 우리는

제3화.그대와 우리는  그대는 우리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죠.우리를 만나고 뒤돌아서 가는 길에도가끔 그대 마음에 쓸쓸함이 찾아오겠지요.  우리의 넘치는 사랑이그대의 어깨를 무겁게 해그대 가는 길 지치고 외롭게 할까봐...  우리는 그대의 진심 하나면 돼요.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가는 시계바늘처럼늘 우리 곁에 있아주면 돼요.  사랑하는 그대여.어느 날 불쑥불쑥 찾아오는 쓸쓸함에손들지 않기를 바라요.  우리 같은 하늘 아래에서같이 비바람 맞고같이 햇살밭을 뒹굴면서서로 지치지 않을 만큼만 바라보고천천히 오래오래 사랑하기로 해요.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곳

제2화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것그곳에 설렘과 그리움이 있다   마음이 설레어 밤잠을 설치는 사이 눈이 내렸다일렬종대의 고양이 발자국이 골목 신우대숲으로 나있다댓잎들이 반짝이는 흰 눈을 덮고 곤한 잠에 빠졌다  멀리 신작로에서 눈길을 걸어 마을을 향해 오는 사람.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도시과자의 향기가 풍겨왔다  참새 한 무리 파드닥 신우대숲을 박차고 뛰쳐나왔다댓잎들이 놀라 벌떡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막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낸 사람 앞으로 흰 눈가루가 날렸다  대숲에서 고양이가 시뻘건 입술을 훔치며 나왔다뛰어나가는 엄마의 버선발에서 고소한 냄새가 풀풀났다  신우대 울타리가 있는 남쪽 작은 마을 골목에는길모퉁이를 돌아 설렘과 그리움이 소풍처럼 왔다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네 맘에 드는 색으로 골라봐라

제8화네 맘에 드는 색으로 골라봐라   일요일은시댁 가는 날이다오늘의 메뉴는동지팥죽이고후식 과일은 샤인머스캣과 설향딸기고저녁 간식은카스테라빵이다   "왔냐?"주름진 얼굴에 화색이 도신다"뭘 이렇게 많이 사 왔냐?"아들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신다"오랜만에 동지팥죽을 먹어보네"며느리 상차림에 흡족해하신다"맛있게 잘 먹었다"참 듣기 좋은 말씀이시다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안방문을 열고 다시 나오시더니수줍은 소녀처럼 웃으신다가쁜 숨을 몰아쉬시며굽은 허리 뒷짐에서 옷을 내미신다알록달록 예쁜 꽃무늬조끼다   "며느리들 하나씩 주려고 샀다"마음에 햇살이 비칩니다"네 맘에 드는 걸로 골라봐라"햇살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분홍색이 젊고 이쁘다 "마음에 따뜻한 마음을 더합니다   어제 내렸던 비는오늘도 내리고내일도 내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