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펜과 네잎클로버 32

"마음 치유

제13화마음 치유  추운 겨울날앙상한 나뭇가지에서홀로 몸부림치던 나뭇잎이겨울바람의 장난짓에맥없이 떨어졌을 때나는 울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억장이 무너져서마음이 찢어져서무너져 내린 억장은 앉은뱅이가 되었고찢겨 버린 마음은만신창이가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나는주저앉았고먹는 것조차 잊은 날 위에나는 또날로 야위어 걌다   어찌할까요?소리 내어 통곡한들못 마시는 술을 마신들책 읽고 음악 듣고 영화 보고 미술관에 간들억장은 계속 무너져 내리고마음은 계속 찢기는걸요    그러다펜을 들었어요붓펜을요손은 알고 있었나 봐요붓펜의 마력을요흰 도화지 위에붓펜은원하는 대로 그리고가는 대로 따라 그렸어요   무너졌던무너져 내리던 억장이 멈추고찢겼던찢겨 버리던 마음이 멈추고이른 아침의 옹달샘 이슬처럼 억장이 맑아지..

나라면 2024.12.27

"꿈을 꾸었네

제12화꿈을 꾸었네  한 겨울밤에꿈을 꾸었네   나는 긴 생머리너는 짧은 상고머리6학년 1반 팻말이앞 문 위에 걸려 있는어느 작은 교실    아무도 없는 교실 안에나와 너단 둘이서키 작은 책상 의자에 말없이그냥앉아 있었네   겨울의 따사로운 햇살이창가 유리창으로부서져 내리고눈부심은 내 머리 위에 따스함은 네 어깨 위에하염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던그 순간   앞문이 열리고한 사람이 들어서고너와 눈이 마주친그 사람이쌩하니..새침하게 뒤돌아서서무정하게 가버렸네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나라면 2024.12.27

"까마귀 구슬프게 우는 성탄절

제10화까마귀 구슬프게 우는 성탄절  '너는 마땅히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아버님의 말씀 받들어평생 여색과 재물을 멀리하고정직함과 충성심으로전투에서 전승을 거두며왜구와 홍건적 침입으로부터나라를 지켜낸 고려 말 무민공 최영 장군   장대한 기골과영민한 기상과늠름한 풍채와뛰어난 용맹과탁월한 지모로문무를 겸비한비범한 인물이었으니어찌 매료되지 아니하리오   가을내 떨어져 수북이 쌓인 낙엽들그 위에 또 쌓인 하얀 눈눈 쌓인 낙엽길을그 숲길을 걸어간다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겨울숲온전한 고요함에 묻히고고요한 정막감에 스며든다우리는   비포장 숲길을 지나층층층 돌계단을 오르자니주차장 앞 비석이 생각났다'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황금을 돌 같이 보았으니오르는 길에 돌계단이 놓인 것 또한 마땅하리오   산 정상에 올라..

"연인과 친구 사이

제14화연인과 친구 사이   연인이었을까너와 나는서로 다름에 끌렸다   친구였을까너와 나는서로 같음에 끌렸다   너는 나를 0순위라 말하지순위가 없다고 해나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하지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   너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나와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이 있어보고 싶은 영화가 다르지 않고듣고 싶은 음악이 같지도 않다   너와 둘이 먹었던 햄버거는 서로 같지 않았고나와 둘이 샀던 선글라스는서로 다르지 않았다   너는 나의 연인이었고나는 너의 친구였고우리는 서로의 다름에 끌렸고서로의 같음에 끌렸으리라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나라면/18라면 2024.12.25

"장욱진 그림과의 만남(12)

제12화'아내'라는 존재  내버려 둔 것뿐이에요혼자 하시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바라볼 뿐이에요남이 안하거나 못하는 일을 멋대로 하실 수 있도록   괴로울 때는그분이 작품이 안되고 내부의 갈등이 심해져스무날 꼬박 술만 드십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그분이 숫돌에 몸을 가는 것 같은 소모 후다시 캔버스에 밤낮없이 몰두하지요   오늘은장욱진의 그림에 스며든 채로이순경 여사의 말을 새겨봅니다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Art라면 2024.12.25

"장욱진 그림과의 만남(11)

제11화참새 잡이놀이  하얀 눈이 내린파란 기와집 마당 한 귀퉁이에쌀겨가 높다랗게 쌓였다그 앞에 키 작은 꼬마가 서 있고그 옆을 참새떼 여러 무리가 포진하고 앉아 있다꼬마는 생각했다도망가지 않는 참새라면내 친구가 될 수 있겠는데..   꼬마의 아버지가 마당에 나오자쌀겨에 주둥이를 파묻고정신없이 먹이를 쪼던 참새들이일제히 날아오른다꼬마는 생각했다참새가 내 친구는 될 수 있어도아버지의 친구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버지의 참새 잡이놀이가 시작됐다조심스럽게 소쿠리를 비스듬히 세우고그 안에 쌀알을 한 줌 뿌려놓았다참새들은 쌀알의 유혹을 참지 못할 것이다나무 막대기를 걸치고 거기다가 줄을 묶고묶인 줄은 꼬마 손에 쥐어준다꼬마는 줄을 잡고툇마루를 지나안방 문지방을 넘어구들장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안방 문을 빼꼼히..

Art라면 2024.12.24

"하다 보면 가다 보면

제10화하다 보면 가다 보면  언제부턴가겨울이 미웠다아니겨울이 무서웠다   차디찬 겨울이란 녀석은인정머리 없게나의 손가락 안으로쓰으윽!쑤시고 들어와서는극심한 통증과 뼈저린 통풍을 툭!무심히 던지고 갔다   이때부터였다손가락으로 펜을 쥘 수 없게 되고허리 디스크로 걷기가 힘들어지고발목의 욱신거림으로 밤잠을 설치게 된 것이이때부터였다   언제부턴가여름이 좋아졌다아니여름이 반가워졌다   뜨거운 여름이란 녀석은고맙게도나의 손가락 안으로스르르!살며시 들어와서는극심한 통증과뼈저린 통풍을확!단숨에 가져갔다   그때부터였다나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셀프 마사지를하다 보니펜으로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되고허리 근력 강화 스트레칭 동작을하다 보니걷기는 물론 조깅까지 가능케 되고발목은 아직까지 꾸준한 스트레칭을 한다그때부터..

나라면 2024.12.24

"당연한 오늘이 특별한 오늘입니다

제9화 당연한 오늘이 특별한 오늘입니다 일요일은친정 가는 날당연한 오늘이특별한 오늘입니다 아버지께는노란빛깔 고운 늙은호박죽 끓여 담고엄마께는양모털 따스운 꽃무늬 조끼 사서 들고오빠에게는살아 숨 쉬는 유산균종균 요거트 만들어 담고남동생에게는프라이팬으로 노릇노릇 눌린 누룽지 들고 간다 손 큰 둘째 언니는등심생고기 구워 쌈채소에 기름장과 양념장 곁들여 넉넉하게 해주고 아낌없이 퍼주는 셋째 언니는바다향 가득한 생굴 한아름 사와밀가루 입히고 계란 묻혀 맛깔스러운 굴전을 내어주고 덤으로달달한 향기 품은 탱탱한 설향딸기와담백한 꼬막무침까지 푸짐하게 사준다 나는 안다 나의 그릇은 국그릇이라는 것을나는 안다언니들의 그릇은 냉면그릇이라는 것을 국그릇은 그만큼만 하는데냉면그릇은 그만큼보다더 해주고더..

친정라면 2024.12.23

"네 맘에 드는 색으로 골라봐라

제8화네 맘에 드는 색으로 골라봐라   일요일은시댁 가는 날이다오늘의 메뉴는동지팥죽이고후식 과일은 샤인머스캣과 설향딸기고저녁 간식은카스테라빵이다   "왔냐?"주름진 얼굴에 화색이 도신다"뭘 이렇게 많이 사 왔냐?"아들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신다"오랜만에 동지팥죽을 먹어보네"며느리 상차림에 흡족해하신다"맛있게 잘 먹었다"참 듣기 좋은 말씀이시다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안방문을 열고 다시 나오시더니수줍은 소녀처럼 웃으신다가쁜 숨을 몰아쉬시며굽은 허리 뒷짐에서 옷을 내미신다알록달록 예쁜 꽃무늬조끼다   "며느리들 하나씩 주려고 샀다"마음에 햇살이 비칩니다"네 맘에 드는 걸로 골라봐라"햇살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분홍색이 젊고 이쁘다 "마음에 따뜻한 마음을 더합니다   어제 내렸던 비는오늘도 내리고내일도 내리겠지..

"장욱진 그림과의 만남(9)

제9화누워서 바라본다   학교에서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청보리 춤추는 논두렁에 벌러덩 누워양팔 뒤로 접어 팔베개하고하얀 뭉게구름 노니는 하늘을 쳐다본다   눈부심은캔디 책받침 꺼내 해님 가리고청보리로는 피리 만들어삐~소리 나는 대로 마구 불어댄다가끔은 삐리릭~ 구색 맞는 소리도 난다   누워서 바라본 하늘은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우주다마치 무중력 행성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서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바라보는 하늘과 다르다누워서 곧바로 바라보는 하늘은 나의 우주다   하늘에 무슨 모양의 구름이 떠 있는지구름의 모양이 어떤 동물로 변해가는지변한 동물들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나는 한참을 누워서 바라본다   머리에 밀짚모자를 쓴 뽀글머리 엄마양이기저귀 찬 아기 양 3마리와 소풍 왔나 봐그런데조심해야 해!엄..

Art라면 2024.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