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라면/사진라면 4

"너와 나 송전탑처럼 가자

제4화너와 나 송전탑처럼 가자가족간의 거리두기   산봉우리마다 단호하게 버티고 서 있는 송전탑들은멀리 떨어져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지만길게 뻗어 잡은 손만큼은 뜨겁고 강렬하다   송전탑들은 간격 벌리기와 좁히기의 시행착오 끝에각자 서 있어야 할 최적기의 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너와 나 송전탑처럼 산과 바다를 건너자   한 발 가까워질수록 급상승하는 바람과 기대는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만 깊어간다   끊어낼 수 없는 인연으로 연결된 우리들돌발 상황에 중심을 잃고 벗어난 거리의 오차는미련 없이 털어낼 수 있는 접지선을 쥐고 가자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비바람을 견딜 수 있다어둠 속으로 빛을 실어 산과 바다를 가는 송전탑처럼밤이 오면 우리 달빛을 베고 함께 잠들자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

"그대와 우리는

제3화.그대와 우리는  그대는 우리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죠.우리를 만나고 뒤돌아서 가는 길에도가끔 그대 마음에 쓸쓸함이 찾아오겠지요.  우리의 넘치는 사랑이그대의 어깨를 무겁게 해그대 가는 길 지치고 외롭게 할까봐...  우리는 그대의 진심 하나면 돼요.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가는 시계바늘처럼늘 우리 곁에 있아주면 돼요.  사랑하는 그대여.어느 날 불쑥불쑥 찾아오는 쓸쓸함에손들지 않기를 바라요.  우리 같은 하늘 아래에서같이 비바람 맞고같이 햇살밭을 뒹굴면서서로 지치지 않을 만큼만 바라보고천천히 오래오래 사랑하기로 해요.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곳

제2화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것그곳에 설렘과 그리움이 있다   마음이 설레어 밤잠을 설치는 사이 눈이 내렸다일렬종대의 고양이 발자국이 골목 신우대숲으로 나있다댓잎들이 반짝이는 흰 눈을 덮고 곤한 잠에 빠졌다  멀리 신작로에서 눈길을 걸어 마을을 향해 오는 사람.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도시과자의 향기가 풍겨왔다  참새 한 무리 파드닥 신우대숲을 박차고 뛰쳐나왔다댓잎들이 놀라 벌떡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막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낸 사람 앞으로 흰 눈가루가 날렸다  대숲에서 고양이가 시뻘건 입술을 훔치며 나왔다뛰어나가는 엄마의 버선발에서 고소한 냄새가 풀풀났다  신우대 울타리가 있는 남쪽 작은 마을 골목에는길모퉁이를 돌아 설렘과 그리움이 소풍처럼 왔다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씨갈무리 이야기

2024.12월호씨갈무리 이야기  뜨겁게 달군 한해살이가 끝났다겹겹이 걸친 옷을 벗어 재끼고이제는 거꾸로 서야 힐 시간.   햇살의 스캔에 걸리면 안 돼.처마 밑에 매달려 바람을 껴안고철 지나 꿈틀거리는 세포를 바짝 말려몸이 쭈글쭈글해져야 돼   마냥 빈둥거리다 겨울을 맞았다간얼어붙어 해동된 몸으로다음번의 봄은 안 올지도 몰라   치렁치렁한 내 머리카락 질끈 동여맨다.습한 마음 처마 밑에 걸어두고가슴속 묵혀둔 감정을 삭여낸다 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