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라면 13

"당연한 오늘이 특별한 오늘입니다

제9화 당연한 오늘이 특별한 오늘입니다 일요일은친정 가는 날당연한 오늘이특별한 오늘입니다 아버지께는노란빛깔 고운 늙은호박죽 끓여 담고엄마께는양모털 따스운 꽃무늬 조끼 사서 들고오빠에게는살아 숨 쉬는 유산균종균 요거트 만들어 담고남동생에게는프라이팬으로 노릇노릇 눌린 누룽지 들고 간다 손 큰 둘째 언니는등심생고기 구워 쌈채소에 기름장과 양념장 곁들여 넉넉하게 해주고 아낌없이 퍼주는 셋째 언니는바다향 가득한 생굴 한아름 사와밀가루 입히고 계란 묻혀 맛깔스러운 굴전을 내어주고 덤으로달달한 향기 품은 탱탱한 설향딸기와담백한 꼬막무침까지 푸짐하게 사준다 나는 안다 나의 그릇은 국그릇이라는 것을나는 안다언니들의 그릇은 냉면그릇이라는 것을 국그릇은 그만큼만 하는데냉면그릇은 그만큼보다더 해주고더..

친정라면 2024.12.23

"너와 나 송전탑처럼 가자

제4화너와 나 송전탑처럼 가자가족간의 거리두기   산봉우리마다 단호하게 버티고 서 있는 송전탑들은멀리 떨어져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지만길게 뻗어 잡은 손만큼은 뜨겁고 강렬하다   송전탑들은 간격 벌리기와 좁히기의 시행착오 끝에각자 서 있어야 할 최적기의 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너와 나 송전탑처럼 산과 바다를 건너자   한 발 가까워질수록 급상승하는 바람과 기대는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만 깊어간다   끊어낼 수 없는 인연으로 연결된 우리들돌발 상황에 중심을 잃고 벗어난 거리의 오차는미련 없이 털어낼 수 있는 접지선을 쥐고 가자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비바람을 견딜 수 있다어둠 속으로 빛을 실어 산과 바다를 가는 송전탑처럼밤이 오면 우리 달빛을 베고 함께 잠들자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

"그대와 우리는

제3화.그대와 우리는  그대는 우리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죠.우리를 만나고 뒤돌아서 가는 길에도가끔 그대 마음에 쓸쓸함이 찾아오겠지요.  우리의 넘치는 사랑이그대의 어깨를 무겁게 해그대 가는 길 지치고 외롭게 할까봐...  우리는 그대의 진심 하나면 돼요.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가는 시계바늘처럼늘 우리 곁에 있아주면 돼요.  사랑하는 그대여.어느 날 불쑥불쑥 찾아오는 쓸쓸함에손들지 않기를 바라요.  우리 같은 하늘 아래에서같이 비바람 맞고같이 햇살밭을 뒹굴면서서로 지치지 않을 만큼만 바라보고천천히 오래오래 사랑하기로 해요.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곳

제2화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것그곳에 설렘과 그리움이 있다   마음이 설레어 밤잠을 설치는 사이 눈이 내렸다일렬종대의 고양이 발자국이 골목 신우대숲으로 나있다댓잎들이 반짝이는 흰 눈을 덮고 곤한 잠에 빠졌다  멀리 신작로에서 눈길을 걸어 마을을 향해 오는 사람.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도시과자의 향기가 풍겨왔다  참새 한 무리 파드닥 신우대숲을 박차고 뛰쳐나왔다댓잎들이 놀라 벌떡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막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낸 사람 앞으로 흰 눈가루가 날렸다  대숲에서 고양이가 시뻘건 입술을 훔치며 나왔다뛰어나가는 엄마의 버선발에서 고소한 냄새가 풀풀났다  신우대 울타리가 있는 남쪽 작은 마을 골목에는길모퉁이를 돌아 설렘과 그리움이 소풍처럼 왔다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씨갈무리 이야기

2024.12월호씨갈무리 이야기  뜨겁게 달군 한해살이가 끝났다겹겹이 걸친 옷을 벗어 재끼고이제는 거꾸로 서야 힐 시간.   햇살의 스캔에 걸리면 안 돼.처마 밑에 매달려 바람을 껴안고철 지나 꿈틀거리는 세포를 바짝 말려몸이 쭈글쭈글해져야 돼   마냥 빈둥거리다 겨울을 맞았다간얼어붙어 해동된 몸으로다음번의 봄은 안 올지도 몰라   치렁치렁한 내 머리카락 질끈 동여맨다.습한 마음 처마 밑에 걸어두고가슴속 묵혀둔 감정을 삭여낸다 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감사한 하루

제8화감사한 하루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했던어린 농부에게땅이 곧 생명이었으리라젖먹이 아가의 울음소리 듣자니동녘 하늘 밝아오기 전에 밭에 나가서녘 하늘 어둠 내릴 후에 집에 돌아와야그렇게 해야만처자식 굶기지 않았으리라   어린 농부는어느덧87살이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목숨 같던 땅도 팔았지요생전에 팔아야지그래야만 자식들 고생하지 않는다고요나는 참 복 받은 자식이지요   지팡이에 의지하는 노부휠체어 타는 노모그 뒷모습이너무 외로워 보여외면하지 못합니다오늘도감사한 하루입니다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친정라면 2024.12.13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랴

제7화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핸드폰이 울린다포뇨 닮은 셋째 언니다아침에 통화했는데 웬일이지?어디든 언제든 달려가고 달려오고 하는지라설마...우리집에 오는 건 아니겠지   설마가 맞았다벌써우리집에 도착했단다울 집은 감기 환자들뿐인데어쩌자고 어쩌려고 왔냐고요이미늦었다현관문이 열리고 있다   포뇨 언니의 오른손에는맑은 대구탕늙은 호박과 찹쌀포뇨 언니의 왼손에는단감종균유산균포뇨 언니의 양손이한가득이다   과일 좋아하는내 동생은 단감생선 좋아하는내 제부는 대구탕호박죽 좋아하는내 조카들은 호박과 찹쌀   음식 주고마음 주고정주고사랑 주는데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랴  감기 옮길세라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포뇨 언니는감기 면역이 생겨서괜찮단다감동입니다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친정라면 2024.12.10

"꽃이 핀다

제6화꽃이 핀다   "아버지! 온 세상이 꽃대궐 같아~ 밖에 나갈까?"  "휠체어 타고 가야지 걸어서는 못가야~ 네가 올래?""내가 갈게"이날을 똑똑히 기억한다4월 7일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던 잊지못할 그 봄날을   "엄마! 밖에 꽃비가 내리는데 꽃구경 나갈까?"엄마의 흰머리 위로엄마의 가냘픈 손과 주름진 얼굴 위로눈부신 봄햇살이 입맞춤을 하자흰머리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가냘픈 손과 주름진 얼굴은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우이천 데크길에 쭉 늘어선 오래된 벚꽃나무들은엄마와 나에게 꽃잎지붕을 만들어 주었다천상의 천사가 내려오는 날이  있다면 오늘 같은 날이리라만개한 꽃잎은 작은 바람을 타고 이내 엄마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엄마의 무릎에 내려앉은 고운 꽃잎 7잎고운 꽃잎이 다칠세라 살며시 집어 손바닥으로 살짝 ..

친정라면 2024.12.05

"우아노 우아노 그대가 사랑에 빠졌어요

제5화우아노 우아노 그대가 사랑에 빠졌어요   예의바른 팔색조 매력남이래요우주최강 목소리 가수래요독보적인 춤 실력 소유자래요만능 끼쟁이 말도 잘한대요    구례 300리 벚꽃축제그대 뛰는 심장소리 구례군 봄밤을 깨우고섬진강변 벚꽃 1만 8천 그루 달콤한 봄바람을 타고 밤하늘 흩날릴 적에올블랙 슈트 속 진핑크셔츠 입은 김희재'꽃피는 사랑노래'  밤공기 물들였네    반짝이는 그대의 두 눈들썩이는 그대의 의자흥얼대는 그대의 노랫소리편안해진 그대의 눈빛그대의 마음에 따뜻한 꽃이 피는 걸 느꼈어요    우아노 우아노그대가 사랑에 빠졌어요김. 희.재.그때 그 시절처럼그대의 아름다웠던 추억처럼순수했던 그 순간처럼그대가 사랑에 빠졌어요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친정라면 2024.11.29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처럼

제4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처럼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변하지 않는 네 빛'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처럼언제나 변하지 않는 울 큰언니겉절이가 먹고 싶다면겉절이 뚝딱 만들고감자갈치조림이 먹고 싶다면감자갈치조림 뚝딱 내놓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처럼언제나 식지 않는 울 둘째 언니볼링이 치고 싶다면볼링장  냉큼 데려가고딸기가 먹고 싶다면딸기농장 후딱 달려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처럼언제나 변치 않는 울 셋째 언니다산초당 강진에 가고 싶다면정약용 유배지 다성각 부릉 가고청보리밭이 보고 싶다면제주 가파도 윙~ 가고   나는우울한 날이나 지치고 힘든 날에도언제나 한결같이 푸르른 언니들이 있습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정라면 2024.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