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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그림과의 만남(9)

제9화누워서 바라본다   학교에서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청보리 춤추는 논두렁에 벌러덩 누워양팔 뒤로 접어 팔베개하고하얀 뭉게구름 노니는 하늘을 쳐다본다   눈부심은캔디 책받침 꺼내 해님 가리고청보리로는 피리 만들어삐~소리 나는 대로 마구 불어댄다가끔은 삐리릭~ 구색 맞는 소리도 난다   누워서 바라본 하늘은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우주다마치 무중력 행성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서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바라보는 하늘과 다르다누워서 곧바로 바라보는 하늘은 나의 우주다   하늘에 무슨 모양의 구름이 떠 있는지구름의 모양이 어떤 동물로 변해가는지변한 동물들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나는 한참을 누워서 바라본다   머리에 밀짚모자를 쓴 뽀글머리 엄마양이기저귀 찬 아기 양 3마리와 소풍 왔나 봐그런데조심해야 해!엄..

Art라면 2024.12.20

"장욱진 그림과의 만남(8)

제8화간절함이 하늘에 닿다   산이 좋다참좋다   나의 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산속에 머문 나무향기를 싣고코끝으로 들어온다   수능 백일기도 중인 이웃 언니 따라 북한산 삼천사에 왔다정적만이 흐르는 고요한 산속에계곡물소리가 경쾌하다입을 크게 벌리고 힘껏 공기를 마신다코를 크게 벌리고 또 한 번 힘껏 공기를 마신다두 눈을 살며시 감아본다넓고 큰 자연을 내 마음 안으로 옮겨 놓는다   자연이 참 좋다참 좋다   대웅전 불상 앞에 섰다처음이다절하는 법을 모르니 어깨너머로 보고 따라 한다   스님의 목탁소리가 대웅전을 울리고수능 기도문을 읽는 부모의 목소리만이 들리는 이곳에서나는 기도한다한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한다앉았다 일어섰다가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한다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고 또또 바라고...나..

Art라면 2024.12.20

"세상에서 제일 좋아

제11화세상에서 제일 좋아  양갈래 댕기머리 소녀가등짝에 책가방을 메고딸기 논에냅다앉았다   까만 비닐 옷 입은 딸기나무에는도랑으로 뻗은 가지마다아빠딸기 엄마딸기오빠딸기 언니딸기아기꽃이  피어 있다   빨갛게 잘 익은 딸기큼직한 아빠딸기를양갈래 댕기머리 소녀는한참을 들여다본다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검지와 중지 사이로딸기 꼭지를 잡고거침없이 딴다입술이 딸기향으로 물든다   다음은...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딸기예쁜 엄마딸기를양갈래 댕기머리 소녀는검지와 중지 사이로딸기 꼭지를 잡고냉큼 잡아 딴다입안 가득 딸기향이 번진다   아침의 이슬 먹고쑥쑥 자라고 있는 딸기잘생긴 오빠딸기떼깔좋은 언니딸기를양갈래 댕기머리 소녀는 바라본다한참을 바라본다눈 안 가득 행복이 넘친다   아침의 이슬 맞고꽃잎 떨군 아기꽃딸기잎..

나라면 2024.12.17

"첫사랑 나의 마지막 사랑

제10화첫사랑 나의 마지막사랑 첫사랑에손만 잡았지 마지막 사랑에손을 잡았고둘이함께같은 밤도 보냈지 바람 불어 기분 좋은 10월의어느 가을날은행잎 쌓인 노란 길그 길을둘이손잡고 걸었고 햇살 눈부신 기분 좋은4월의어느 봄날벚꽃 휘날리던 꽃비 길그 길을둘이차타고 다녔어 그렇게처음으로가슴 설레던 순간첫사랑이 오고 그리고바로이거다 싶은 순간나의마지막 사랑이 되었네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나도 따뜻해집니다

제10화나도 따뜻해집니다  국립암센터 1층 창구노오란 환복을 입은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나의 눈은빠르게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손을 맞잡고 앉아 있는 부부어깨를 감싸고 앉은 모녀혼자 앉아 있는...   엉덩이를 번쩍 들고 일어서더니나를 향해활짝 웃는 얼굴이 있다오른손 왼손양손을 높이 들고마구마구 흔든다노오란 환복이다   초음파실의 자동문이열리고노오란 환복을 입은 친구가들어가고초음파실의 자동문이닫힌다   CT실의 자동문이열리고노오란 환복을 입은 친구가들어가고CT실의 자동문이닫힌다   PET실의 자동문이열리고노오란 환복을 입은 친구가들어가고PET실의 자동문이닫힌다   열리고닫히는자동문이괜스레 야속하다   새벽 KTX를 타고  9시 40분에 도착한 친구택시 타고 10시에 도착한 나   친구는 공복 상태로 검..

"씨갈무리 이야기

2024.12월호씨갈무리 이야기  뜨겁게 달군 한해살이가 끝났다겹겹이 걸친 옷을 벗어 재끼고이제는 거꾸로 서야 힐 시간.   햇살의 스캔에 걸리면 안 돼.처마 밑에 매달려 바람을 껴안고철 지나 꿈틀거리는 세포를 바짝 말려몸이 쭈글쭈글해져야 돼   마냥 빈둥거리다 겨울을 맞았다간얼어붙어 해동된 몸으로다음번의 봄은 안 올지도 몰라   치렁치렁한 내 머리카락 질끈 동여맨다.습한 마음 처마 밑에 걸어두고가슴속 묵혀둔 감정을 삭여낸다 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고맙다!

제7화고맙다!  8월 어느 일요일알콩달콩은어머님 댁에 갔어자동차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는데숨이 멎는 줄 알았어더워도 이렇게까지 더울 수가 없더라집안으로 얼른 들어갔지   그런데 말이야집안이 바깥보다 더 찜통인 거야에어컨도 안 켜고 계셨던게 분명해달콩이가 급히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냈어알콩이는 삼다수 2l  생수병이 하나밖에 없는 걸 봤지일단목부터 축여야만 했어달콩이가 건넨 물 한잔이메말라 있던 목줄기를 타고 내려갔어역시 물이 최고야!   에어컨 리모컨을 켰어실외기 팬이 돌아가지 않는 거야에어컨은 날갯짓만 위아래로 움직일 뿐냉기를 보내주지 않았어에어컨을 안켜신게 아니라A/S가 필요했던 거지   오늘은 일요일이야에어컨 엔지니어 출장 서비스는 월요일에나 가능하대어쩌자고하필이면오늘 같은 폭염에 고장이 나야고....

"감사한 하루

제8화감사한 하루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했던어린 농부에게땅이 곧 생명이었으리라젖먹이 아가의 울음소리 듣자니동녘 하늘 밝아오기 전에 밭에 나가서녘 하늘 어둠 내릴 후에 집에 돌아와야그렇게 해야만처자식 굶기지 않았으리라   어린 농부는어느덧87살이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목숨 같던 땅도 팔았지요생전에 팔아야지그래야만 자식들 고생하지 않는다고요나는 참 복 받은 자식이지요   지팡이에 의지하는 노부휠체어 타는 노모그 뒷모습이너무 외로워 보여외면하지 못합니다오늘도감사한 하루입니다  안녕하세요.라면상회 클로버 세상입니다.

친정라면 2024.12.13